티스토리 뷰

반응형

호날두 1부 (클럽 경력 & 하이라이트)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명, 그러나 날강두...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 대해

-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두스산투스 아베이루(Cristiano Ronaldoss Santos Aveiro, 1985년 2월 5일~)는 포르투갈 훔샤르 출신의 축구 선수로, 현재 이탈리아 최상위 프로 축구 리그인 세리에 A 유벤투스 FC 소속이다. 포지션은 포워드.

 

애칭은 [CR7], [로니]로 한국의 미디어로부터 [호날두]라고 불린다. 그러나 2019년 내한 당시 팀 K리그 VS 유벤투스 FC 경기에서 단 1초조차 출전하지 않아 인터넷에서는 대부분 날강도 + 호날두를 합친 [날강두]로 불린다.

(워낙 다른 곳에서 많이도 관련 사건을 다루었기에 여기서 해당 부분은 다루지 않습니다. 아래 나무위키 바로가기를 참고해주세요)

[호날두가 날강두가 된 과정]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플레이어 중 한 명으로(다른 한 명은 리오넬 메시), 소속된 4개 팀 모두 리그 및 국내 슈퍼컵 우승을 차지하였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를 5번이나 제패하였다.

리그 우승도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3번,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에서 2번, 2019년에는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도 우승하면서 유럽 3대 리그에서 우승한 사상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7번이나 득점왕에 올랐고 발롱도르를 5번 수상하는 등 숱한 영예를 안았으며, 또한 레알 마드리드 통산 최다 골 기록, 프리미어리그 시즌 최다 골 기록, UEFA 챔피언스리그 통산 최다 골 기록, 한 시즌 최다 골 기록 등으로 수많은 기록을 세우고 있다.

현재 포르투갈 대표팀 주장을 맡고 있으며, 역대 포르투갈 대표팀 최다 출장 기록, 유럽 국가 중 대표팀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자 UEFA 유럽 선수권 통산 최다 출장, 최다 득점 기록 보유자이기도 하다.

 


UEFA EURO 2016에서는 주장으로서 포르투갈을 주요 국제대회(메이저 대회) 첫 우승으로 이끈, 객관적으로 평가하면 엄연히 역대 최고의 축구선수 중 한 명이다.

 

 약력

1) 유소년 시절: 호날두는 1985년 2월 5일, 대서양에 떠 있는 포르투갈 마데이라 섬의 최대 도시 푼샬(마데이라 자치령의 수도)에서 자치단체의 정원사였던 아버지 호세 디니스 아베이루와 조리사 마리아 돌로레스 두스 산투스 아베이루 사이에서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호날두의 아버지 디니스는 과거 포르투갈 식민지 전쟁에 참가했고, 그 후유증으로 알코올 의존증이 있었다. 어머니 마리아는 그로 인해 고통받고 있었으며 호날두를 임신했을 때 낙태도 고려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디니스는 공무원으로 일하면서 지역의 [CF 안도리냐]라는 아마추어 축구 클럽팀의 관리를 도왔고, 또한 호날두의 사촌도 안도리냐에서 뛰었기 때문에, 호날두는 이 클럽에서 6살 때 부터 축구를 시작한다.

 


처음 축구를 시작했을 때는 중앙수비였으나, 점차 포지션을 끌어올려 공격수로 뛰게 된 호날두는 어릴 적부터 재능을 타고났지만 팀이 지면 아쉬움으로 울기도 해 [울보(crybaby)]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또한, 어릴 적 목표였던 포르투갈 대표 선수로 [루이스 피구(Luís Filipe Madeira Caeiro Figo, 1972~)], [마누엘 루이 코스타(Rui Manuel César Costa, 1972~)], [페르난두 코투(Fernando Manuel Silva Couto, 1969~)]를 꼽고 있다.

4년 후인 1995년에 [CD 나시오날(Clube Desportivo Nacional)]에 입단, 1997년 부활절 방학을 이용해 할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스포르팅 CP(Sporting Clube de Portugal)]에서 입단 테스트를 받았다.

당시 호날두가 좋아하는 팀은 스포르팅의 라이벌이자 포르투갈의 명문구단인 [SL 벤피카(Sport Lisboa e Benfica)]였으나, 스포르팅의 팬인 어미니의 설득으로 유소년 팀에 입단하여 모친과 함께 리스본으로 이주하였고 2만 5천 유로(약 3,522만 원)의 이적료를 기록한다.

 

 

2) 클럽

 

2-1. 스포르팅 CP 시절: 스포르팅 CP 입단 후 급성장하면서 유소년 팀에서 활약, 스포르팅 역사상 처음인 한 시즌 만에 U-16, U-17, U-18, B팀, 톱 팀으로 시합에 출전한 선수가 되었다.

2002년 10월 7일, [모레이렌스 FC(Moreirense Futebol Clube)]와의 경기에서 첫 선발을 완수하였고 클럽 사상 최연소 골을 포함한 멀티 골을 기록한다.

2-2.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시절: 2003년 8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명문구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Manchester United Football Club)]와의 친선경기 후, 그 센스를 주목한 [알렉스 퍼거슨(Sir Alex Ferguson, 1941~)] 당시 감독이 호날두를 불러들여 잡담을 나눴다.

런던으로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소속 선수들에게 영입 할 선수를 물었는데, 당시 맨유에서 활약하던 [로이 킨(Roy Maurice Keane, 1971~)]이나 [뤼트 판 니스텔로이( Rutgerus Johannes Martinus "Ruud" van Nistelrooij, 1976~)]등이 퍼거슨에게 직접 영입을 권유했다고 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어시스턴트 코치로 있던 [카를로스 케이로스(Carlos Manuel Brito Leal Queiroz, 1953~)] 현 콜롬비아 대표팀 감독은 호날두가 데뷔했을 때부터 눈여겨보다가, 호날두 영입을 일찌감치 퍼거슨 감독에게 건의했었다.

호날두 영입에는 당시 [리버풀(Liverpool Football Club)][아스널(Arsenal Football Club)]도 적극적으로 추진했고, 2002년 11월 당시 아스널 감독인 [아르센 벵거(Arsène Charles Ernest Wenger, 1949~)]과 스태프로부터 아스널 팀 훈련에 초청받기도 한다.

호날두는 리버풀로 이적하는 것이 꿈이라고 밝히기도 했지만, 프리미어리그 2003-04 시즌 개막 3일 전인 8월10일, 10대 선수 이적료로는 당시 잉글랜드 사상 최고액인 1,224만 파운드(약 193억 원)에 5년 계약으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전격 이적했다.

이적 초창기에는 스포르팅 CP에서 본인이 달았던 28번을 원했지만, [데이비드 베컴(David Robert Joseph Beckham, 1975~)]이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면서 공석이 된 7번 자리를 퍼거슨 감독으로부터 받게 된다.

 

 

프리미어리그 2003-04시즌,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 트래퍼드(Old Trafford)][볼턴 원더러스(Bolton Wanderers F.C.)]을 맞아 열린 개막전을 앞두고 서브 멤버가 되면서 후반 16분, 교체 출전으로 프리미어 리그에 데뷔한다.

데뷔전 후, 맨유의 레전드인 [조지 베스트(George Best, 1946~2005)] [틀림없이 가장 익사이팅한 데뷔]라고 칭찬했을 정도로 뛰어난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이후, 비교적 선발로 출장하는 일이 많아졌으나 선발과 교체를 왔다 갔다 하는 상태로 퍼거슨이 능숙하게 배정을 해 호날두의 성장을 촉진하였고, 2005년 10월 29일에 있던 [미들즈브러(Middlesbrough Football Club)] 전에서는 클럽의 프리미어 리그 통산 1,000호째가 되는 의미 있는 골을 터뜨렸다.

2006-07시즌에는 17골 14도움으로 개인 통산 최다기록을 세우며 팀의 우승을 이끌었으며, 호날두 본인도 1977년 [앤디 그레이(Andy Gray, 1955~)] 이후 30년 만에 사상 두 번째로 PFA 올해의 선수상과 FWA 올해의 선수상을 더블 수상했다.

그뿐만 아니라, 팬 투표에 의한 올해의 선수상에도 선정돼 사상 첫 3관왕에 올랐으며 2006년 11~12월에 프리미어 리그 월간 MVP를 2개월 연속 수상, [로비 파울러(Robert Bernard "Robbie" Fowler, 1975~)][데니스 베르흐캄프(Dennis Bergkamp, 1969~)]에 이은 프리미어 사상 10년 만에 세 번째 쾌거였다.

최고의 축구 선수를 정하는 발롱도르 투표에서는 아쉽게도 당시 최고의 폼을 자랑하던 [카카(Ricardo Izecson Dos Santos Leite, 1982~)]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2007-08시즌은 개막부터 경이적인 속도로 골을 기록, 공식전 통산 42득점을 기록했으며 리그에서는 31득점으로 득점왕에 오르며, 팀의 리그 2연패에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된다.

 

PFA 올해의 선수상과 FWA 올해의 선수상을 2시즌 연속으로 수상, 2008년 3월 19일 볼턴과의 경기에선 처음으로 주장 완장을 차고 출전했다.

 

 

2007~2008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도 8골을 넣으며 득점왕을 차지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9시즌 만에 세 번째 챔피언스리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됐다.

2008년 5월 21일 열린 결승전에선 [첼시(Chelsea Football Club)]를 상대로 선제골을 넣었으나, 경기는 [렘파드(Frank James Lampard, OBE)]의 동점골로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졌다.

여기서 호날두는 세 번째 키커로 나섰으나 당시 첼시의 골키퍼인 [페트르 체흐(Petr Čech, 1982~)]가 코스를 잘 읽어 실패, 그러나 첼시도 다섯 번째 키커였던 [존 테리(John George Terry, 1980~)]가 비로 질퍽거린 피치에 발을 헛디뎌 뼈아픈 실축으로 실패한다.

이후 맨유의 골키퍼 [에드빈 판 데르 사르(Edwin van der Sar, 1970~)][니콜라 아넬카(Nicolas Sébastien Anelka, 1979~)]의 킥을 세이브하면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승리가 결정되었다. 해당 시즌에서의 활약으로 호날두는 그 해 발롱도르와 FIFA 최우수선수상을 동시에 수상했다.

 


2008년 여름, 이전부터 호날두 영입을 목표로 하고 있던 스페인의 명문구단 [레알 마드리드(Real Madrid Club de Fútbol)]가, 이적 성사는 시간 문제라며 미디어를 통해 어필하면서 호날두를 둘러싼 이적 소동이 발발했다.

공식 제안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인 발표를 한 것에 대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측이 거세게 반발하며 법적 대응도 불사하겠다고 나서는 등 얘기가 커졌는데, 호날두 자신은 공식적으론 침묵했으나 어릴 적 선망의 클럽 레알 마드리드 이적이 성사될지 모른다며 마음이 기울었음을 인정했다.

 

 

최종적으로 퍼거슨 감독과 논의한 결과, 호날두는 잔류를 결의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에 잔류 선언이 게재되었다. 그 중에 당시 이적 소동에 대해서는 [(양 클럽이나 그 관계자가 아닌) 나에게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2009년 여름에 이적을 희망했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레알 마드리드와의 이적 교섭을 허가했다.

2-3. 레알 마드리드 시절: [플로렌티노 페레스(Florentino Pérez Rodríguez, 1947~)]가 두 번째 회장직에 오른 레알 마드리드는 타도 [바르셀로나(F.C. Barcelona)]를 목표로 내걸고, 6월11일 [지네딘 지단(Zinedine Yazid Zidane, 1972~)]의 기록을 뛰어넘는 당시 축구계 사상 최고액인 8,000만 파운드(약 1,264억 원)의 이적료로 호나우두를 영입했다.

그해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 외에도 발롱도르 수상 경험자인 카카와 프랑스 리그 소속인 [올랭피크 리옹(Olympique Lyonnais)]의 젊은 에이스였던 [카림 벤제마(Karim Mostafa Benzema, 1987~)] 등을 영입했다.

7월 6일 레알 마드리드의 홈구장인 [산티아고 베르나베우(Santiago Bernabéu)]에서 입단 발표가 있었고, 등번호는 9번으로 발표됐으며 입단 발표에는 약 10만 명의 팬이 모였다.

이것은 1984년, 이탈리아 세리에 A 리그 [SSC 나폴리(Società Sportiva Calcio Napoli S.p.A.)]에 가입한 [디에고 마라도나(Diego Armando Maradona Franco, 1960~)]의 7만 5,000명을 제친 사상 최다 인원이 몰린 입단식이었다.

 


또한, 호날두의 유니폼은 마드리드 시내에서만 120만 장이 팔렸고 그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현지 유니폼 매출로만 회수했을 정도다.

7월 21일 프리 시즌에서 아일랜드 축구 팀인 [섐록 로버스 FC(Shamrock Rovers F.C.)]전에서 데뷔, 그 다음주 에콰도르 축구 팀인 [LDU 키토(Liga Deportiva Universitaria de Quito)] 전에서 PK로 첫득점을 기록한다.

그리고 8월 29일, 호날두는 [데포르티보 라코루냐(Real Club Deportivo de La Coruña, S.A.D.)] 전에서 프리메라리가 데뷔를 장식하였고 페널티킥으로 첫 골도 터뜨렸다.

 


이적 첫해였던 09시즌, 호날두는 부상으로 출발이 늦어졌는데도 리그 3위인 26골을 기록했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이 16강에 그쳤으나 자신은 6경기에서 7골을 넣으면서 경기 수가 적었에도 득점 순위 공동 2위에 올랐다.

 

10월에는 발목 부상으로 클럽에서의 경기 외에 헝가리 대표팀과 경기에도 출전하지 못했는데, 그 부상은 마술사의 주술에 의한 것이라는 찌라시 보도도 나왔다.

 


이듬해에는 주장인 [라울 곤살레스(Raúl González Blanco, 1977~)]의 이적으로 그토록 기다리던 등번호 7번을 맡게 되었고, 포지션도 중앙에서 왼쪽 윙으로 옮겨 이전 시즌을 웃도는 페이스로 득점을 양산한다.

10월 22일 [라싱 산탄데르(Real Racing Club de Santander)] 전에서는 호날두 커리어 최초로 1시합 4득점을 기록, 그 달만 13득점을 올리며 자신의 월간 최다 득점 기록도 갱신했다.

 


이후에도 레알 마드리드에서 놀라운 페이스로 득점을 양산하며 클럽 사상 가장 빠른 속도 통산 50득점을 기록했으며, FC 바르셀로나와의 코파 델 레이 결승에서는 0-0으로 맞선 연장 전반, [앙헬 디 마리아(Ángel Fabián Di María, 1988~)]의 크로스를 헤딩 결승골을 뽑아내면서 레알 마드리드에게 18년 만의 국왕배 우승을 안겨주었다.

5월 10일 [헤타페 CF(Getafe Club De Fútbol)]전에서는 리가 사상 최초인 한 시즌에만 6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하였고, 시즌 전체 대회 총 득점수를 47로 늘리면서 1959-60시즌 [페렌츠 푸스카스(Puskás Ferenc, 1927~2006)]가 기록한 클럽 기록을 갱신하였다.

시즌 마지막 라운드인 [UD 알메리아(Unión Deportiva Almería)] 전에서도 멀티골을 기록하면서 리가 통산 40득점으로, 프리메라리가 시즌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하고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했다.

 

2012년 2월 12일, [레반테 UD(Levante Unión Deportiva, S.A.D)] 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의 통산 4,000번째 중거리 슛은 많은 언론의 찬사를 받았다.

 


3월 24일 [레알 소시에다드(Real Sociedad de Fútbol, S.A.D.)] 전에서 2골을 기록, 사상 가장 빠른 페이스로 통산 92경기 만에 프리메라리가 통산 100득점을 기록했다. 그 동안의 최고 기록은 페렌츠 푸스카스의 105경기였으며, 호날두는 13경기 더 적은 큰 폭으로 해당 기록을 경신하게 되었다.

또한, 시즌 통산 100경기 째 출전한 5월 5일 [그라나다 CF(Granada Club de Fútbol)]전에서 득점, 프리메라리가 통산 100경기 출전에 111득점을 기록, 종전 기록인 푸스카슈의 97득점을 크게 갈아치웠다.

 


2011~2012시즌은 지난 시즌을 뛰어넘는 리가 46골, 시즌 60골을 기록 하면서 대활약 했으나, 하필 득점왕은 시즌 73골을 기록한 [리오넬 메시(Lionel Andrés Messi Cuccittini, 1987~)]에게 내줬다.

그러나 레알 마드리드는 프리메라리가 사상 첫 승점 100점이라는 위업을 세웠으며, 호날두는 해당 리그에 참가하고 있는 레알 마드리드 이외의 19구단 모두로부터 한 시즌에 골을 넣은 최초의 선수가 됐다.

2012년 9월 2일 그라나다 전에서는 리그 경력 통산 200호 골을 기록했고, 두 번째는 레알 마드리드 통산 150호 골을 기록했는데, 호날두는 두 골을 넣고도 자신의 골을 전혀 기뻐하지 않았으며 시합 후에 [슬픈 기분일 때는 골을 넣어도 기뻐하지 않는다]라고 말해, 온갖 억측이 잠시 나돌았다.

10월 7일 엘 클라시코에서 2골을 넣으며, 엘 클라시코에서 사상 첫 6경기 연속골을 기록함과 동시에 레알 마드리드 선수로서 바르셀로나의 구장인 [캄 노우(Camp Nou)]에서 2골을 넣은 10번째 선수가 되었다.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은 준결승에서 탈락했으나, 호날두는 12골을 넣으며 대회 득점왕에 올랐다.

2013년, 레알 마드리드와 자국인 포르투갈 대표팀에서 자신의 최다인 합계 69득점을 기록했고 2014년 1월 13일 메시, [프랑크 리베리(Franck Henry Pierre Ribéry, 1983~)]를 누르고 5년 만에 두 번째 발롱도르를 수상했다.

FIFA 발롱도르가 된 이후로 메시 이외에 첫 수상자이며, 또한 1년 내내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한 선수로는 [알프레도 디 스테파노(Alfredo Stéfano di Stéfano Laulhé, 1926~2014)], [레몽 코파(Raymond Kopa, 1931~2017)]에 이어 세 번째 수상자가 되었다.

 


수상식에서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다]라며 기쁨을 표현하였고, 팀메이트나 가족에게의 감사를 표했다.

2013-14시즌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는 9골을 터뜨리면서 조별리그 최다 득점 기록을 경신했으며, 16강전에서도 그 기세는 꺾이지 않고 합계 17득점으로 대회 최다득점 기록을 넘겨버리며 챔피언스리그 제패에 기여했다.

리그전에서도 31골을 넣으며 두 번째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했고, 프리미어리그에서 31골을 기록한 [루이스 수아레스(Luis Alberto Suárez Díaz, 1987~)]와 함께 자신의 세 번째 유럽 골든슈를 거머쥐었다.

 


또한, [마누엘 노이어(Manuel Peter Neuer, 1986~)], [아리엔 로벤(Arjen Robben, 1984~)]을 누르고 2014년 UEFA 유럽 최우수선수상도 수상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카림 벤제마, [가레스 베일(Gareth Frank Bale, 1989~)]과의 스리톱은 BBC로 불릴 정도로 막강했다.

2014년 8월 13일, [세비야 FC(Sevilla Fútbol Club)]와의 UEFA 슈퍼컵에서 두 골을 넣으며 타이틀 획득에 성공했고, 2014-15 시즌 리가 14 라운드 [셀타 데 비고(Real Club Celta de Vigo)] 전에서는 리가 사상 최다가 되는 23번째 해트트릭을 달성했다.

유럽 챔피언으로 출전한 FIFA 클럽 월드컵 2014에서는 무득점에 그쳤지만 멕시코의 [크루스 아술(Club Deportivo Cruz Azul)]과의 경기에서 2도움을 하는 등 레알 마드리드의 우승에 기여하며 대회 실버볼을 수상했다.

2015년 1월에는 2년 연속 FIFA 발롱도르를 수상하였고, 같은 해 4월 5일 열린 그라나다 CF 전에서는 8분 동안 해트트릭을 달성하는 등 5득점을 올려 레알 마드리드에서 통산 300득점을 기록한다.

5월 24일 리그 최종전에서는 전반 34분에 PK에 성공하면서 2시합 연속 해트릭을 기록, 리그 35경기에서 48득점을 기록하며 2시즌 연속 프리메라리가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팀은 준결승에서 탈락했지만, 자신은 3시즌 연속 득점왕을 차지하였다.

2015년 9월 12일 [RCD 에스파뇰(Reial Club Deportiu Espanyol de Barcelona)]과의 경기에서 5골을 기록함으로써 리가 통산 득점수 231득점으로 라울의 228득점을 제치고 클럽 역대 1위에 올랐다.

 

 

그 후 9월 30일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스웨덴의 [말뫼 FF(Malmö Fotbollförening, Malmö FF)]전에서 두 골을 넣음으로써 경력 통산 500득점을 넘어서면서 레알 마드리드 통산 득점에서도 라울이 보유한 클럽 최다골 기록과 타이를 이뤘다.

12월 8일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말뫼와의 2차전에서도 4골을 넣으며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사상 최다인 11골을 기록, 같은 달 15일 UEFA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 베스트 일레븐에 선출되었다.

2016년 3월 5일 셀타 데 비고 전에서는 통산 250득점을 리가 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기록했고, 4월 9일 [SD 에이바르(Sociedad Deportiva Eibar)] 전에서 올 시즌 프리메라리가 통산 30호 골을 기록하며 사상 첫 6시즌 연속 30호 골을 기록한다.

챔피언스리그 8강 2차전인 독일 [VfL 볼프스부르크(Verein für Leibesübungen Wolfsburg)] 전에서 해당 시즌 6번째이자 통산 40번째, 이 대회 사상 첫 한 대회에서 3번으로 리오넬 메시와 함께 최다 기록인 이 대회 통산 5번째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아틀레티코 마드리드(Club Atlético de Madrid)]와의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는 승부차기에서 다섯 번째 키커를 맡아 성공시키면서 다시 한번 빅이어를 들어올렸다.

2016년 11월 19일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면서, 호날두는 해당 더비매치 통산 18골로 디 스테파노가 가진 더비매치 최다득점 기록을 경신했다.

12월 12일에는 2년 만에 네 번째로 발롱도르 수상이 확정되었고, 같은 달 열린 FIFA 클럽 월드컵 2016에선 준결승 골과 결승전 해트트릭 등으로 이 대회 골든 볼에 선출되었다.

 


그 해 12월, 중국 축구 클럽에서 연봉 1,400억 원, 이적료 4,200억 원, 합계 5,600억 원이라는 엄청난 금액의 이적 제의가 왔으나 [돈이 전부는 아니다]는 이유로 이적 제의를 거절했다.

2017년 4월 12일 챔피언스리그 8강 1차전 [바이에른 뮌헨(Fußball-Club Bayern München e. V.)] 전에서 2골을 기록하면서 유럽축구연맹 주최 클럽대회에서는 사상 최초로 통산 100득점에 도달했다.

그리고 2차전에선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챔피언스리그 통산 100득점을 기록했고, 5월 2일 열린 준결승 1차전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전에서도 3골을 터뜨려 챔피언스리그 사상 두 번째, 결승 토너먼트에서는 사상 첫 2경기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탈리아의 명문구단인 [유벤투스 FC(Juventus Football Club S.p.A.)]와의 결승전에서는 선제골을 포함한 2골을 뽑아내며 맨 오브 더 매치로 선출되었는데, 결승전에서의 첫 번째 골은 레알 마드리드 챔피언스리그 통산 500호 골, 두 번째 골은 호날두 커리어 통산 600호 골이 되었다.

 


2017년 8월 13일에 열린 스페인 슈퍼컵 바르셀로나와의 첫번째 경기에서는 80분에 역전골을 넣었으나, 82분에 시뮬레이션 액션으로 이 경기 두 번째 옐로카드를 제시받고 퇴장당했으며, 24일에는 두 시즌 연속이자 통산 세 번째 유럽 최우수선수로 선출되었다.

2017년 12월, 아부다비에서 열린 FIFA 클럽 월드컵에서는 [알 자지라 클럽(Al Jazira Sports Club)]과의 준결승에서 유일한 골을 터뜨렸다.

 

2017-18시즌은 앞서 설명한 슈퍼컵 퇴장으로 4경기 출장정지 처분이 내려졌고, 프리메라리가에서의 시즌 첫 골은 8라운드인 헤타페 전으로 슬로우 스타트가 됐지만,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득점을 양산했다.

 


유벤투스와의 준준결승까지 9경기 연속 득점을 올리며, 전년도 결승 득점과 더불어 챔피언스리그 사상 최초로 10경기 연속골을 달성하였다. 특히 유벤투스전에서 터뜨린 두 번째 골 오버헤드 슛은 적지인 유벤투스의 서포터들로부터도 기립박수를 받았고, 전 세계 언론들도 극찬하였다.

호날두 자신도 [틀림없이 자신의 골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라고 자찬하는 동시에 박수를 보낸 유벤투스 서포터스에게 감사를 표했다.

 


2018년 7월 10일, 레알 마드리드는 호날두가 보여준 의사와 요망을 바탕으로 유벤투스 FC로의 이적에 합의하였음을 발표하였다. 탈퇴 이유에 대해서는 종종, 회장인 페레스와의 불화가 보도되고 있었는데 후에 그것이 사실이라고 인정을 한다.

그 후 레알 마드리드 측의 초청을 받아 2020년 3월 1일 있었던 엘 클라시코를 보러 갔고, 틀어진 사이는 다소 완화되었다고 한다.

 


호날두는 레알 마드리드 9년간 438경기에서 451골을 넣으며, 레알 마드리드의 역대 최다 득점 선수가 됐다. 리그에서는 합계 311골을 넣으며, 메시에 이어 프리메라 역대 2위 득점 기록에 역대 득점 랭킹 상위 10명의 선수 중 유일한 한 경기당 한 골이 넘는 득점률을 기록한 선수가 됐다.

호날두는 레알에서만 총 16개의 타이틀을 획득했는데, 3연패를 포함해 5시즌 동안 챔피언스리그만 4차례 우승했으며, 발롱도르만 4차례, 최우수선수상 2차례, 골든슈를 3차례 수상하며 화려한 시기를 보냈다.

 

2-4. 유벤투스 시절: 2018년 7월 10일, 유벤투스 FC 회장인 [안드레아 아녤리(Andrea Agnelli, 1975~)]가 호날두가 쉬고 있던 그리스까지 협상하러 직접 갔다는 소식이 보도되었다.

얼마 후, 레알 마드리드의 발표가 있었고 유벤투스 FC도 호날두의 영입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다. 이적료는 세리에 A 사상 최고액인 1억 유로(약 1,400억 원)로, 2년간에 걸쳐 지급된다고 발표했다.

 


호날두의 유벤투스 이적의 이유로 2017-18시즌 챔피언스리그에서 골을 넣었을 때 유벤투스 팬으로부터 기립박수를 받아 감명을 받아 이적을 결심했다는 말도 있다.

등번호는 역시나 호날두의 트레이드 마크라고 할 수 있는 7번이며 지난 시즌 7번을 착용한 [후안 콰드라도(Juan Guillermo Cuadrado Bello, 1988~)] 역시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환영의 메시지와 함께 등번호를 양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19시즌인 9월 16일, 4라운드 [US 사수올로 칼초(Unione Sportiva Sassuolo Calcio)]에서 이적 후 데뷔 골을 포함한 2골을 넣는 활약을 펼쳤다. 또한, 이날의 두 번째 골은 리그전 커리어 통산 400골이며, 유럽에서 5번째 선수가 되었다.

11월 24일 13라운드 [SPAL(Società Sportiva Dilettantistica Real S.P.A.L.)]전에서는 유벤투스 사상 가장 빠른 공식전 10경기만에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했다.

12월 2일, 14라운드 [ACF 피오렌티나전(ACF Fiorentia S.p.A.)]에서도 득점을 결정지으며 데뷔 시즌에 14경기 10득점을 넣은 것은 약 60년만의 쾌거가 되었다.

2019년 3월 12일 챔피언스리그 16강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와의 경기 1차전에서 0-2로 팀이 패했고, 승리를 위해선 최소 3점이 필요한 상황에서 호날두는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팀의 역전 8강 진출을 이끌었다.

 


4월 20일 세리에A 33라운드에서 승리하면서 팀의 8연패에 공헌했는데, 유럽 5대리그(스페인·영국·독일·이탈리아·프랑스)에서는 프랑스의 리옹이 7연패와 지난 시즌 유베가 연패 기록으로 나란히 있었지만, 신기록을 갱신했다.

 

2019-20시즌, 10월 1일에 열린 UEFA 챔피언스리그 [레버쿠젠(Bayer 04 Leverkusen Fußball GmbH)]과의 경기에서는 라울, 메시 등과 함께 챔피언스리그 14시즌 연속 득점과 함께 최다 승리, 라울과 함께 33개의 다른 클럽으로부터 득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2020년 1월 6일 [칼리아리 칼초(Cagliari Calcio S.p.A.)] 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 사상 두 번째로 영국·스페인·이탈리아 3대 리그 해트트릭 달성자가 되었다.

세리에 A 23라운드 [엘라스 베로나 FC(Hellas Verona Football Club S.p.A.)] 전에서는 2-1로 패했지만 클럽 신기록인 10경기 연속골을 넣었다.

24라운드를 쉬고 맞이한 2월 22일, 25라운드 SPAL전에서 세리에A 최다 연속경기 골과 어깨를 나란히 한 11경기 연속골을 터뜨렸다.

 


7월 4일 [토리노(Torino Football Club S.p.A.)] 전에서 리그 25번째 골을 넣었다(이적 후 첫 프리킥에 의한 골). 유벤투스 선수로 세리에A 한 시즌 동안 25득점을 기록한 것은 1960-61시즌 [오마르 시보리(Enrique Omar Sívori, 1935~2005)] 이후 60년만이었다.

7월 20일 34라운드 [라치오(Società Sportiva Lazio S.p.A )] 전에서 2골을 넣으며 프리미어리그·라리가·세리에A 등 각국 리그에서 통산 50골 이상을 기록한 사상 첫 선수가 됐다.

 


2019-20시즌은 공식전 37득점을 기록, 1933-34시즌 [펠리스 보렐이(Felice Placido Borel, 1914~1993)] 기록한 36득점을 넘어 유벤투스 연간 최다득점 기록을 86년 만에 경신했다.

또한, 잉글랜드·스페인·이탈리아 톱 리그에서 시즌 25득점 및 30득점 이상을 기록한 사상 첫 번째 선수가 되었고, 그 외 유럽 5대리그 최고득점 기록을 153년 만에 갈아치웠다.

 

[국가대표 경력은 2부에서]

반응형
댓글